국호가 조선이 된 이유
태조 이성계가 국호를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경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명나라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국호가 조선이 된 이유에 대하여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게 된 배경
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직후 국정에 대한 강령 17개 조를 발표하는 등 건국 후의 제반 조처를 강구하였는데 이 중에 가장 시급한 현안이 국호를 개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성계는 중추원사 조림을 명에 파견하여 신정권의 수립을 알리는 한편 국호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전하게 합니다. 이에 명태조 주원장은 신정권의 수립을 승인하면서 국호 개정에 대해서도 신속하게 보고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명으로부터 국호 개정이 승인되자 이성계는 원로들과 백관을 한자리에 모아 국호를 의논하도록 했으며, 그 결과 '조선'과 '화령'이라는 두 명칭이 정해졌습니다. 조선은 단군조선, 기자조선 등 역사적인 맥을 잇는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화령은 이성계의 출생지라는 이유로 채택된 듯합니다.
이 화령이라는 지명은 원래 화주목 이었는데 공민왕 시대에 화령부로 개칭되었다가, 국호를 조선으로 확정한 1393년에는 이성계의 외조부 출생지인 영흥진의 이름을 따서 '영원히 흥한다'는 뜻인 영흥(永興)으로 다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화령'과 '조선'이라는 두 이름이 결정되자 이성계는 1392년 11월 예문관학사 한상질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하여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하나를 국호로 택해줄 것을 청하게 됩니다. 이때 주문사로 중국에 파견된 한상질은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려 공신이 된 한명회의 조부였습니다. 그는 국호 개정의 논의가 있자 주문사를 자청하여 1392년 7월 명나라로 떠나 이듬해 2월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결정받고 돌아오게 됩니다.
조선이라는 국호의 결정과 관련하여 조선과 명의 입장은 사뭇 달랐습니다. 조선 측에서는 단군조선과 기자조선의 문화와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의도였지만, 명은 기자조선을 의식하고 조선이라는 국호에 쾌히 동의했던 것입니다.
'논어'에 등장하는 은나라의 현인 기자가 조선으로 망명하여 백성을 교화시켰으며, 이에 주나라가 기자를 조선의 제후에 봉하였다는 '한서지리지'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명의 주원장은 조선이라는 이름이 중국의 제후국임을 뜻한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조선이라는 국호는 민족주의적인 역사관과 사대주의적인 가치관이 혼재되어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성리학을 지배 이념으로 하여 건국한 조선왕조는 왕도 정치의 구현과 중국과의 사대관계 유지가 이상적인 정치와 외교로 인식했고, 그러한 이유로 기자와 같은 중국의 현인이 조선왕조와 국호가 같았던 고조선에 와서 백성을 교화한 일을 명예스러운 일이었다고 여겨 기자동래설을 긍정적으로 수용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흔적은 고려시대의 기록에서도 나타나는데, 성리학이 도입된 이후인 고려 숙종 때 평양에 세워진 기자릉에 대한 제사가 국가적 차원에서 거행되었던 점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조선에 대한 이 같은 인식과는 달리, 근대 이후의 역사 연구에서는 기자와 기자조선을 별개의 존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기자가 은나라 말기의 현인으로서 실재 인물이었다 하더라도, 이 기지와 결합된 이른바 기자조선의 실체는 새롭게 규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으로 국호가 조선이 된 이유에 대하여 알아보았는데,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현시대의 일반인으로서는 조금 씁쓸한 부분도 없지 않은 배경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셨던 분들께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도움이 되셨다면 좌측 하단의 '♡'좋아요 한번 눌러주시고, 필요하신 분들께 공유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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